어렸을 때부터 계절별로 한약을 먹었다.
엄마 말로는 내가 아기때부터 아주 아팠다고 했다. 너무 작고 자주 아파서 병원을 제 집 드나들듯이 다녔다고 했다. 실제로 어렸을 때 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다녔던 소아과병원이 있었고 그 곳의 의사선생님의 거의 내 주치의나 다름 없었다. 2살이 지났을 무렵부턴 계절마다 한약을 먹였다고 했다. 그렇게 한약을 잘 먹어서 다행히 잘 클 수 있었다고 엄마는 믿었다.
한약은 아주 썼지만 달콤했다. 씁디 쓴 입맛 뒤에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었고 그 관심이 싫지 않았다. 도리어 좋았다. 세 남매의 첫 째로 태어나 흔히들 말하는 책임감만 지워진 K장녀가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순간이었다. 동생들은 써서 안먹는다고 손사레를 치면 도망다니던 한약인데, 난 꼬박꼬박 챙겨먹었다. 어쩐지 한약을 안지어 주는 계절이면 어딘지 시름시름 앓았다. 동생들은 약을 안지어줘도 나는 지어줬다. 그래서 더 좋았다.
어느 날 심상치 않은 증상으로 찾은 병원에서 홍삼이 안맞으니 홍삼은 먹지말고 여성에게 좋은 거, 이를테면 자몽이나 석류같은 거에 이상반응이 있으니 섭취하지말라고 했다. 한약의 기본이 되는 홍삼이 금지되었으니 청천벽력같았다. 그렇게 한약을 못먹은지 2년이 지났다. 나는 1년 반쯤 됐던 작년말부터 올해 초까지 대상포진으로 아주 고생했다.
씩씩하고 건강하고 싶은데 아빠는 나보고 ‘너는 왜 그렇게 자주 아프냐, 마음 아프게’ 라고 했다. 엄마는 ‘약하게 낳아줘서 미안하다’고 엄마 잘못이라고 했다. 엄마 아빠가 미안해 하고 마음아파하는게 싫어서 몸에 좋다는 것 면역력에 좋다는 건 다 먹었다. 프로폴리스, 화수분, 유산균. 그리고 두번째 대상포진이 왔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판단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엄마는 멀리 대전까지 가서 한약을 지어다 주셨다.
한약을 안먹어서 아픈 것 같다고. 나는 반쯤 한약으로 만들어진 아이여서 약발 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며 큼직한 상자를 턱- 내려줬다. 이번 한약은 홍삼도 안들어갔다고, 이거 3달만 먹으면 대상포진 두 번 다신 안 걸린다고 제법 맛도 있다고 엄마는 말했다. 아침에 한 포, 자기 전에 한 포. 꼭 챙겨먹으라고 엄마는 신신당부를 했다.
그렇게 지어준 게 아래 사진의 한약이다. 제법 먹을만 하다던 약은 먹어본 약 중에 제일 쓰다. 홍삼이 안 들어가면 어떤 것 들이 들어갔을까? 내가 들으면 아나, 뭐. 아침 저녁으로 나는 엄마의 사랑을 꿀떡꿀떡 삼킨다. 어릴 때 먹던 그 어떤 한약보다 쓰고 쓴 한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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